길고양이 돌봄과 익명의 혐오세력

대학 내 길고양이 돌봄 활동

대학교내에서 사는 길고양이들은 생각보다 많다. 일단 내가 다니는 학교만 해도 정착해서 사는 아이들이 20마리 정도 된다. 동물권 동아리로 시작해서 현재는 학내 길고양이 돌봄 모임으로 바뀐 모임의 장을 4년간 맡으면서 대학 내에서 살아가는 고양이들의 삶을 엿봤다. 봄만 되면 찾아오는 발정기, 집고양이 못지않게 덩치가 큰 한 구역의 대장고양이, 구내염이 걸려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해 말라가는 얼룩무늬 고양이, 허피스에 걸려 숨소리가 거칠고 눈꼽이 잔뜩 끼어있는 삼색이... 수많은 고양이를 구조해서 중성화를 시키고 치료를 하고 또 입양을 보내곤 했다. 지금은 학내에 모든 암컷 고양이들은 중성화를 마쳤다. 하지만 아직도 배가 고프고 아픈 고양이는 너무 많고 일손은 부족하다. 모임에 들어갔을 당시 10명이던 인원은 현재 실제 활동하는 인원이 거의 없다시피 하고, 급식을 도와주시는 분 또한 20명 가까운 인원에서 서너명 으로 줄었다. 매일 급식소에 나가 밥을 주는 활동마저도 유지하기 힘들 만큼 길고양이에 대한 관심이 많이 줄어든 상태이다. 현재 코로나 상황도 영향이 적지않을거라 생각한다. 긴 팬데믹 속에서 길고양이 돌봄에 나선 많은 사람들이 지쳤을거라 생각된다. 하지만 나에게는 지금의 팬데믹보다 훨씬 더 한 고통의 시기가 있었다.

대학 익명 커뮤니티와 길고양이 혐오

같은 대학교 내에서 활동할 수 있는 익명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은 나에게 말그대로 악몽이다. 한때에는 열심히 사용하기도 했던 유용한 커뮤니티 어플리케이션이 악몽으로 변한 것은 한순간이었다. 길고양이 돌봄을 통해 ‘동물권’을 도모하는 우리의 모임이 에브리타임에서 수많은 공격을 받게 되었던 일화에 대해서 얘기해보고자 한다.

앞서 언급한 동물권 모임(앞으로는 모임이라고 지칭하겠다)에서 활동하면서 나는 교차페미니즘을 접하게 되었다. 모임은 동물권을 표방하며 다른 인권, 다양성 단체들과 교류하고 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대하는 방식은 크게 눈에 띄는 방식은 아니었다. 대자보에 연서명을 하고, 행사에 공동주최로 이름을 올리는 정도였다.

문제는 2018년 총여학생회 폐지로 인해 학내 여성주의단체에 연서명을 올렸을 때였다. 당시 모임 내 인원들은 총여 폐지에 대해 반대입장을 갖고 있었고 그래서 연대 요청이 왔을 때 망설임 없이 연대에 응했다. 학교 에브리타임은 총여폐지에 대해 찬성을 외치는 게시글로 가득했다. 동시에 익명의 그들은 총여 폐지에 대해 반대를 하는 학내 여성주의모임의 대자보에 연서명을 올린 단체들을 하나하나 욕하기 시작했다. 우리 모임 역시 포함 되어 있었고, 굉장히 화가 나는 일이었지만 당시 모임 내에서는 중앙동아리 인준을 위한 전동대회 준비로 인해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안좋은 일은 왜 한번에 다 일어나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에서 아주 인기가 많던 고양이 한마리가 교통사고를 당해 구석에 있는 것을 발견해서 급하게 병원에 데리고 갔다. 첫 동물 병원에서는 안락사를 권하길래 당장 문을 열고 나와 좀 더 큰 동물병원으로 고양이를 서둘러 데려갔고 수술이 가능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수술 비용만 자그마치 200만원이라는 것이다. 당시 모임의 통장에 있는 잔고는 약 60만원 정도로 기억한다. 수술을 위해선 적어도 140만원이라는 돈이 더 필요했다. 그 날 저녁 바로 모금 글을 올렸고 수많은 커뮤니티에 글을 퍼트렸다.

결과부터 얘기하자면 이틀만에 약 600만원 정도의 돈이 모였고, 그 중 500만원이 그 고양이의 치료비로 사용되었다. 현재 고양이는 2마리의 다른 고양이와 함께 행복한 집고양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첫 날 밤 200만원이 넘는 후원금이 들어오는 기적이 일어난 밤이기도 하지만, 다른 의미로도 잊을 수 없는 밤이었다.

“그냥 모금받는 단체를 바꾸는게 어때? 모금액 다 이월하고. 다른 정상적인 동아리가 모금하면 금방 모일 것 같은데. 고양이가 넘 안타깝네” 18/06/18 20:21 (알수없음)

“돈 관리랑 고양이 책임 다른 모임으로 넘기면 바로 돈 모인다. 진짜로 고양이 생각하는 거면 그렇게 해줘라” 18/06/18 21:13 익명

“나 (모임이름) 동아리 서명한 호구인데 동연(동아리연합)에 연락해본 사람 있어? 연락해서 나 서명취소하고싶다 그러면 해줘? 나 별 신경 안쓰려고 했는데 서명할때 별 친분도 없는 극렬페미가 존나 이름부르고 잡으면서 설명도 없이 종이내밀고 서명하라길래 걍 제목만 보고 고양이구나 별거없겠지 하고 서명했는데 핫게간 어떤 페미 페북글보니까 잘 보지도 않고 서명한 내 잘못이니까 교훈얻어가는거라네ㅋㅋ 이거보고 열받아서 안되겠다 그러니까.. 동연에 연락하면 서명 취소해줌?” 18/06/03 10:03 익명

위는 현재까지 에브리타임에 남아있는 몇주간의 글 중 일부이다. 에브리타임에는 나와 모임원들의 페이스북 캡쳐가 끊임없이 올라왔다. 꼴페미, 우회상장, 그 외에 수많은 여성혐오적인 욕을 끊임없이 봐야했다. 모든 글은 익명으로 올라왔고 모임원들의 이름이나 얼굴은 하나도 가려지지 않은 채 게시되어있었다. 주변의 도움으로 신고를 계속해서 했기 때문에 게시글들은 내려갔지만 그날의 충격은 내가 다시는 ‘자유게시판’에 들어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확인 결과 위의 일로 동아리연합회에 연락이 온 학우는 단 한명도 없었다.

고양이를 혐오하기에 길고양이를 돌보는 여성까지 혐오하는 것은 사실 너무 흔하게 겪었기에 그리 상처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런데 페미니스트가 돌보는 고양이기에 그 고양이는 죽을것이라는 말은 너무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결국 고양이를 돌보고 구조하고 치료한 것은 여성이자, 페미니스트이자 동물권을 지지하는 나와 나의 동료들이었다. 수많은 혐오세력의 위협에 많이 지치기도 했다. 그래도 또다른 길고양이를 돌보는 페미니스트들을 보면서 힘을 낸다. 그래야만 한다. 길냥이들은 여전히 길에 있으니까.

길고양이를 돌보는 페미니스트로서 티티캣을 찾아와 또다른 페미니스트들과 나의 경험을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다행이다. 경험에 대한 공감과 고민을 함께 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이 일을 계속하는데 가장 큰 힘이 된다. 만약 어딘가에 나와 같은 경험을 한 페미니스트가 있다면 이 글을 통해 위로받았으면 한다. 일단 나는 티티캣에 와서 큰 위로를 받았으니 당신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