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는 역대 최악의 긴 가뭄을 보냈고, 대형 산불 소식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탄소를 흡수하던 산은 불이 붙는 순간 이산화탄소를 매섭게 뿜어냈고, 숲에 살던 다양한 생명들은 한순간 터전을 잃었습니다. 때 이른 폭염에 놀라기도 전 심각하게 쏟아지던 비와 폭우는 도시에 살아가는 인간들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앞으로 자연재해는 더욱 빈번해질 것으로 예측됩니다. 폭염, 폭우, 가뭄은 이제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우리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는 동일하게 구성되지 않습니다. 성별, 장애, 직업, 소득, 거주형태 등, 취약한 사람을 더욱 취약하게 만듭니다. 여성환경연대가 올해 진행한 기후변화 피해경험 실태조사에서는 기후변화의 피해와 그로 인해 개인이 떠맡게 된 여러 가지 부담을 알 수 있었습니다. 경제적 부담 가중, 건강 영향 피해, 주거공간의 불안정까지 개인은 기후변화로 인해 많은 것들을 부담해야 했습니다. 장애인의 경우 이동권의 제약이 더욱 심해졌고 기후변화로 인해 여성들은 돌봄 부담을 더욱 크게 느꼈습니다.
무엇보다 여성 전반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기후 우울’입니다. 기후 우울이란 지금까지 기후 대응에 실패한 원인을 이유로 더는 희망이 없다고 느끼거나, 극심한 기후변화에 대해 불안해하고 상실, 분노, 슬픔을 느끼는 증상을 말합니다. 여성환경연대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환경에 관심을 가질수록, 환경적인 실천을 할수록,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느낄수록 기후우울을 더욱 심하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기후위기를 더욱 실감하는 집단은 누구일까요?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에 심하게 노출되는 집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후우울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건 기후위기라는 사회적 위기의 상황 속에서 여성들이 수많은 피해와 어려움을 감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별, 장애, 직업, 소득 등 다양한 주체들의 목소리입니다. 기후우울을 겪는 사람은 단순하게 무기력과 우울증을 겪는, 혹은 환경에 “유난인”, 혹은 약으로 증상을 다스려야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진단과 해결이 아닌 기후우울이 어떤 의미인지 묻는 질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