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 쟁뉴라고 합니다.
음성언어 사용자 여러분, 여러분은 목소리를 골라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입을 열때 상대에 대해 재빨리 판단하고, 어떤 목소리를 낼지 선택하는 일 말입니다. 친구와 털털한 말투로 욕을 푸지게 하다가, 갑자기 공손히 전화를 받고 부드럽고 친절한 목소리를 낸 적은 많으셨을 수도 있겠습니다. 갑자기 목소리가 바뀌는 것에 대해 곁에 있던 친구들과 깔깔 웃으셨던 경험도 있으실 거예요. 하지만 여기서 제가 말하고자 하는 목소리란, 단순히 그런 톤의 문제를 넘어선 이야기입니다.
세상은 목소리를 둘로 나눕니다. 남자목소리와 여자목소리로요. 수많은 배리어프리 자막에서, 영화가 끝나고 올라가는 크레딧에서 크게 역할을 맡지 않은 엑스트라의 대사는 괄호를 치고 남자1, 여자3, 이런식으로 표시됩니다. 저 역시 성별 A로 간주될 외모를 하고 있을 때에도, 입을 여는 순간 아, 성별 B시군요? 라는 말을 들은 경험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목소리를 골라본 적이 많습니다. 상대와 상황을 보고, 제 목소리의 성별을 고릅니다. 친구가 아는 제 목소리와 부모가 아는 제 목소리가 다릅니다. 일터에서의 목소리와 마트에서의 목소리가 다릅니다. 어떤 때는 충분하지 않았을까 두려워하기도 하며, 항상 긴장한 채 입을 뗍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도, 어떤 목소리를 내는 것이 나을지에 대해 저울을 한참은 재다가 왔습니다.
케이트 본스타인은 말한 바 있습니다. “패싱은 상벌의 문제이다. 내가 어떤 성별로 인지되는지에 따라, 나는 맞지 않을 수 있다.” 저는 집에서 쫒겨나지 않기 위해 어떤 목소리를 고르고, 패싱이 되기 위해 어떤 목소리를 고르고, 안전을 위해 어떤 목소리를 고르곤 합니다. 화장실에 갈때마다 목소리를 연습하고, 밤마다 제 목소리를 녹음하며 연습을 한 시기도 있습니다.
일상에서, 저는 맞지 않기 위해 목소리를 고릅니다. 심지어 연대의 장에서 조차도, 어떤 목소리를 내야할지 고민합니다. 그리고 고작 목소리를 고르지 못해 그 연대의 장에 참여하지 못하곤 합니다. ‘트랜스젠더가 의심되면 신고하라’는 말이 공공연히 집회 매뉴얼에 실리는 것을 보고 몇 년째 트라우마가 남은 트랜스젠더 페미니스트로서, 이 반응이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 비정상신체를 가진 사람들 모두, 연대의 장 안에서의 배제가 주는 절망감을 겪어보셨을 것이라 믿습니다. 연대의 장에서 뒤풀이만큼은 참석하지 못하는 비건 페미니스트, 수어통역과 문자통역이 제공될거라는 믿음이 없어 집회에 차마 가지 못하는 농인과 청각장애인 페미니스트, 교통편이 부담스러워 차마 행사에 가지 못하는 지방의 페미니스트, 고작 경사로가 없어 행사 장소에 접근하지 못하는 휠체어 이용자 페미니스트. 언어가 통하지 않아 각종 연대의 장에 참여하지 못하는 난민 페미니스트. 정신병과 질병을 욕으로 사용하는 구호가 불편했던 아프고 미친 페미니스트, 어떤 종류의 편의를 위해, 어떤 종류의 고려 부족과 혐오로 인해 연대의 장에서 밀려난 이들은 이렇게 많습니다.
저는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그렇다면, 더 많은 연결을 위해, 수많은 비정상들이 함께 해 나간다면 어떨까요. 가장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고, 마침내는 밀려난 이들이 결집하여 일상 구석구석 뿐 아니라, 밀려난 연대의 자리에도 비정상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야 할 때입니다. 상황이 조금씩은 나아지고 있지만, 보다 구석진 연대의 장에서도, 비건과, 장애인과, 비수도권 사람과, 청소년과, 난민과, 아픈 사람과, 트랜스젠더와, 퀴어 페미니스트가 존재하고, 우리도 연대하고있다는 사실을 알리며, 함께 싸워나가고 싶습니다.
모든 차별과 혐오는 연결되어있습니다. 기후위기는 가난한 사람에게 더 가혹합니다. 여성혐오의 논리는 성소수자 혐오 논리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지방의 인프라 부족은 홀로 지역을 떠날 수 없는 청소년에게 더 가혹하게 적용되어, 청소년간의 격차를 더 크게 만듭니다. 목소리를 고르지 못한 저는 연대의 순간 뿐만이 아니라 일상생활 전반에서 위축되곤 합니다.
혐오와 차별이 모두 연결되어 있으니, 그 해결 역시 모두를 위합니다. 휠체어 이용자를 위해 설치된 엘리베이터는 노인이나 다친 사람에게도 필요합니다. 성별임금격차의 해소는 트랜스남성의 트랜지션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자막과 문자통역은 청인들의 이해에도 도움을 줍니다. 아프고 미친 사람이 일을 할 수 있는 세상은 모두가 일할 수 있는 세상일 것이고, 여성이 안전한 거리는 모두가 안전한 거리일 수 밖에 없습니다. 혐오와 차별과 폭력 밑에서, 결국 우리는 같이 위축되어있고, 같이 고통받고 있으며, 하나의 해결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연대할 수 밖에 없습니다. 비정상들은 배제되지 않아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우리가 비정상이라는 사실은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비정상이라는 사실이 우리를 온전히 설명해주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비정상이기에 위축되어있지만, 비정상이기에 자신과 더 많이 싸우고 결국에는 그 미운 자신과 화해한 사람들입니다. 기껏 화해한 자신을, 자신의 목소리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삶을, 모두가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사이에서 우리가 우리로 존재하는 것이 위축되지 않는 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