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다른몸들 질병과 함께 춤을 모임을 함께 하고 있는 박은영이라고 합니다. 오늘 잔치의 이름인 ‘약자생존’은 먹어야 하는 한 웅큼의 약을 떠올리다가 생각난 이름이라고 하더라고요. 약, 약, 약……. 매일매일 먹어야 할 약의 알 수를 세어야 하는 약자들의 생존 스토리 파티라니.... 두근대는 마음에, 저는 어느 날 아침, 손에 쥐고 있던 약을 바닥에 떨어트릴 뻔 했습니다.

우리는 항상 ‘적자생존’에 대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왜 굳이 그 말을 그렇게 많이 들어야 했을까요? 적자생존의 길에 재미있는 게 얼마나 있다고요. 사실 적자생존의 길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아는, 경부고속도로 같은 길입니다. 속도감에 취할 수 있을진 몰라도, 딱히 색다른 이야기는 많이 보이지 않더라고요.

반면, 경부고속도로의 속도엔 영 맞지 않는 몸을 가진 우리는 매번 새롭게 길을 찾고 만들어가야 합니다. 장애와 질병이 있는 우리 몸은 체력은 저질이고 속도는 느립니다. 하지만 우리는 장애와 질병이 없는 몸에 맞춰 할당된 노동량과 다른 책임을 이행해야만 사회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전략을 짜고 창의력을 발휘합니다. 맡겨진 일을 가장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이리저리 얽히고설킨 병원 스케줄을 조정해서 일상의 피해를 최소화할 최적의 시간표를 짜냅니다. 체력과 정신력 소모를 최소화하면서도 소중한 관계를 지키고 가족을 돌볼 적절한 시간을 확보하는 노하우도 길러갑니다.

이처럼 약자생존은 아직 매번 없는 길을 만들어가는 창의적이고 모험적인 과정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표준적이지 않고 약한 몸으로 일상을 만들어가는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갖습니다. 가끔은 우리를 ‘약자’라고 부르는 것이 역설적이게 여겨질 정도입니다. 우리는 시시각각 변하는 몸 상태와 상황 속에서 고도의 전략을 짜며 길을 내는 사람들이니까요. 없는 길을 만드는 탐험가의 이미지는 늘 어떤 장애물도 기어코 무찌르는 강한 남성으로 그려져 왔으니까요.

우리의 일상은 강함과 약함의 이분법을 무너뜨립니다. 그럼에도 저는 우리를 강인하다고, 우리가 약자인 듯한 강자라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건 말장난일 뿐이고, 이 사회는 지금까지 그 정도의 얄팍한 말장난으로 장애와 질병과 장애인과 질병인의 삶의 무게를 개인에게 일임하는 데 성공해 왔으니까요.

저는 우리가 강인하다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몸과 마음이 얼마나 섬세하고 약한지, 자세하게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그것이 나와 당신, 우리의 동료 인간과 더 넓게는 인간이 아닌 동물과 식물들의 본질이라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성경의 한 구절을 살짝 제 마음대로 이용하여, 이제 우리의 강함이 아닌 우리의 약함을 자랑하는 문화를 함께 만들어 보자고 제안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전형적이지 않은 몸을 가진 뇌성마비인입니다. 전형적이지 않은 몸으로 이 사회에 맞춰 살아오는 과정에서 얻은 만성질환도 가지고 있습니다. 저의 몸은 고강도의 노동에 쉽게 지치고, 저의 마음은 미세한 차별도 감지할 만큼 섬세합니다. 그런 제가 전형적인 신체에 맞춰 돌아가는 사회에서 살아남은 과정이 혹시라도 대단해 보인다면, 그건 저의 강인함의 증거가 아니라 사회의 무감각과 무책임의 증거라는 게 정확한 표현입니다.

우리는 혼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혼자 성장할 수도, 혼자 건강을 유지할 수도, 혼자 아플 수도, 혼자 늙어갈 수도 없습니다. 우리의 몸이 건강하거나 스트레스의 정도가 견딜 만할 때, 사실은 주위의 문화와 환경이, 때로는 잘 보이지 않는 여성들의 손길이 우리를 돌보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돌봄의 자원의 자원과 손길은 표준적인 몸, 건강한 몸, 남성의 몸 곁에서는 투명해지길 강요받아 왔습니다. 반대로 표준적이지 않은 몸을 가진 장애인, 질병인, 여성에게는 돌봄의 수고와 비용이 강조되면서, 그 비용을 절약할 필요성만 이야기되어 왔습니다.

제가 더 많은 돌봄이 필요했던 유년 시절, 유치원과 학교 시설과 활동들은 저보다 비장애인 친구들을 돌보고 키우는 데 더 적합했습니다. 지금도 일상의 편리와 삶의 질을 높인다는 각종 물품과 프로그램, 정책들은 모두 표준적인 비장애인의 신체와 일상만을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사회는 습관적으로 장애인을 돌보는 데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드는지 투덜댑니다.

이제 투명해졌던 돌봄의 색깔을 되찾고 사람들이 마음대로 덧칠해 버린, 표준적이지 않은 몸들의 고유의 색깔을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건강하고 독립적이라고 여겨지던 사람들을 지탱해온 돌봄노동과 자원을 인정하고, 지나친 돌봄을 필요로 한다는 눈총을 받아온 약하고 독특한 몸들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돌봄에 대해 이야기해야 합니다. 거기에 더해 충분히 돌봄받지 못하는 가운데에서도 주변을 돌봐온 우리의 돌봄노동 또한 드러내면 좋겠습니다.

사회는 우리에게 강인해지고 건강해져야 한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독특하고 약한 몸과 마음 그대로 생활하고 즐거움을 누리고 아프고 늙어가고 죽어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그 길은 홀로가 아닌 공동체가, 개인이 아닌 사회가 공동으로 닦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그 길은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접근 가능한 길이어야겠지요.

약자생존을 위한 탐험은 아프고 약해지고 늙어갈 우리 모두의 앞에 놓여 있습니다. 누구나 돌봄 받으며 걸을 수 있는 길을 내는 창의적인 그 작업에 여러분을 초대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